김민석, 수억원 정치자금, 동반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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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김민석, 수억원 정치자금, 동반자살

by 키워드1223 2025. 6. 11.

 2004년 8월 24일 서울 영등포의 한 아파트에서 60대의 老(노) 부부가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습니다. 동반자살을 한 듯, 노부부의 목에는 아파트 천장에 고정된 가는 줄이 감겨 있었습니다. 전날까지만 해도 노부부는 평상시처럼 아파트 주변을 오갔다고 합니다. 경찰 조사결과, 노부부는 회사를 운영하면서 자금 압박을 받자 이를 견디지 못해 사건 당일 동반자살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김민석, 수억 원 정치자금, 동반자살

노부부는 40대 초반의 아들과 함께 통신기기 대리점을 운영했다고 합니다. 노부부는 90세의 노모를 두고 있었습니다. 노모는 자신의 아들과 며느리가 자살한 사실을 모른 채 1년이 지나서야 가족으로부터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아 며칠 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필자는 지난 4월 총선 직후 사건의 정황을 자세히 알고 있는 한 인사로부터 “노부부는 단순한 자살이 아니라 한 젊은 정치인에서 비롯된 동반자살 사건”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 인사가 말한 젊은 정치인은 최근 법원으로부터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이었습니다.

 

이 인사에 따르면, 노부부는 김민석 최고위원과 양부모·양아들 관계로 10년 이상 김 최고위원의 뒤를 돌봐줬다고 합니다. 그런데 김민석 최고위원이 2002년 서울시장 선거와 2004년 총선에 출마하면서 돈을 빌려간 후 이를 갚지 않자, 노부부가 운영하던 회사는 부도위기에 몰렸고, 김 최고위원과의 인간적 관계가 완전히 깨졌다고 합니다.

 

 

 

이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아무리 빌려준 돈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자살까지 할 이유가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로부터 석 달 뒤 한 知人(지인)으로부터 노부부가 남긴 A4 용지 15장 분량의 遺書(유서)를 입수한 후 노부부가 자살을 택한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노부부는 신용보증기금(이하 신보기금) 이사장 앞으로 보낸 유서에서 김 최고위원에 대한 인간적 배신감을 곳곳에서 토로했습니다. 자신들이 운영해 온 회사와 가족을 살리기 위해 신보기금의 도움도 간절히 요청했습니다.

 

유서내용과 관련해 김민석 최고위원은 지난 9월 필자에게 “그들을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른 적이 없고, 그들로부터 단돈 1원도 받은 적이 없다. 자살까지 하면서 사람을 모함하다니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후 검찰이 김민석 최고위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수사한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현재 검찰은 김 최고위원이 정치자금법을 위반했다고 확신하고 있고, 민주당은 편파수사 및 야당 탄압이라고 맞서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노부부가 작성한 유서에는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과 별개이지만, 돈이 오간 형식이 비슷하다는 점이 발견됐습니다. 노부부는 자살하기 하루 전인 2004년 8월 23일 장문의 유서를 쓴 후 같은 날 신보기금 이사장에게 등기우편으로 보냈습니다.

 

신보기금 이사장에게 유서를 보낸 이유는 노부부가 회사 명의로 신보기금의 자금을 빌리게 된 경위와, 빌린 자금의 일부가 김민석 최고위원에게 넘어간 정황을 밝힘으로써 신보기금의 자금회수를 늦추고 추가 자금을 요청하기 위함이 목적이었습니다.

 

노부부는 “아들과 함께 운영하던 회사는 연간 120억 원의 매출액을 달성할 정도로 건실한 회사였다”라고 밝혔습니다. 

 

 

“신용보증 돈은 내 마음대로 하니 1억 원 달라” 요구

유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노부부는 격한 감정에 유서를 쓴 탓인지 문맥상 생략된 부분이 일부 있습니다. 원문을 살리되, 이해를 돕기 위해 이를 보충했습니다. 유서에 의하면, 노부부와 김민석 최고위원 간의 돈거래는 1996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신용보증 이사장님, 그리고 지점장님. 이 글을 보실 때는 저와 제 아내는 죽어서 썩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모든 유서의 서류는 검찰총장님께도 올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살아있을 때 용서를 구하는 이 글은 그 어느 용서보다 깊습니다. 먼저 보증하여 주신 은혜로 사업을 잘하고 직원과 전 식구가 먹고살았으니 고맙고 또 한 번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65세 우리나라 나이로 66세. 생을 마감하고 이렇게 될 줄은 꿈엔들 생각했겠습니까? 우리 부부는 실로 회한이 가슴을 난도질하는 지금, 저는 저 밝은 태양이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뜨거운 태양이 아니라 귀하고 또 귀한 태양입니다.

 


 
저의 회사는 삼성으로부터 대상도 받고, 분기별 최우수 판매점으로 전국에서 ‘00 통신’하면 대형 회사로 대우받습니다. 삼성에서도 우수한 회사로 보고 있어 상을 받고 특혜도 누리고 있습니다.”
 
“이사장님, 저희 회사는 아버지인 제가 모든 자금문제를 관장하는 가부장제도 회사입니다. 현재 24억 원 보증을 (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받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무한 상태입니다. 왜…? 여러 가지 여건도 있겠으나, 96년 저희 회사는 직판점을 하고 있을 때 120여 억 원어치를 판매했습니다.

 

당시 회사는 친동생이 (운영)했습니다. 그런데 그 착한 놈이 사기도박꾼들에게 걸려 회사 돈 6억여 원을 버리고 96년 11월 11일 도망갔습니다. 어음은 도래하여 알지도 못하는 은행으로부터 어음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수신제가’를 잘못한 제가 피해 없게 다 물어주었습니다. 2년 후 그 사기도박꾼들은 잡혀서 징역 2~3년을 살았습니다. 보상이나 변제는 하나도 못 받았습니다.”
 
“그러던 중, 영등포 乙區(을구)의 국회의원은 김민석이었는데, 그는 본인이 자청하여 수양아들 노릇을 했습니다. (저를) 무척 따랐고, 전망이 밝은 이였습니다. (김민석이) 95년 처음 5000만 원 보증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96년 말경 김민석이 8억 원을 (신보기금에) 신청하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국회) 재경분과 의원이어서 당시 신보기금 C 이사장님도 알고 있으며, 영등포지점장에게도 직접 전화를 했다고 했습니다. 직접 찾아가서 서류를 제출해, 6억 원의 신용보증서를 받았습니다.

 


 
당시 김민석은 국회 재경분과 의원이었지요. 6억원을 받고 나니 바로 C 이사장께 10%를 갖다 줘야 차후에도 편하게 이용하고, 관계자에게도 (돈을) 주어야 하니 4000만 원, 총 1억 원을 달라고 (했습니다). 신용보증 돈은 내가 마음대로 하니 차후를 위해 (돈을) 달라고 하여 1억 원을 주었지요.”

 

 
“24억원 중 8억 4000만 원 빼앗겨”

노부부는 유서에서 “당시 신보기금으로부터 자금을 빌린 적이 없어 신보에 대한 상식이 전무한 상태”라고 밝히고 있다. 6억 원부터 시작된 차용금액은 2004년 사망 직전까지 총 24억 원으로 불어났습니다. 노부부는 “24억 원 중 8억 4000만 원을 김민석 씨에게 빼앗겼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4억 원을 받은 돈 중 8억 4000만 원은 빼앗겼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여기에 선거를 4번, 서울시장 1회 포함해 치르는 동안 저희 회사는 겉만 남은 알거지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기묘한 정치인들의 갈취 방법에, 회사는 도산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꾐에 빠졌다고 느낀 것은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때였습니다.
 
 4억원을 신보기금에서 받아 다 쓰고, 빼앗기고 난 후, 우리는 생산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받을 수 없는데도, (김민석이) 기술보증기금 이사장님께 1억 원을 받게 이야기했다고 해서 영등포지점에 가 1억 원을 받았습니다. 물품을 사서 판매한 후 1억 원은 자기가 쓰기 위해 달라고 하길래 1억 원을 다 주었습니다. 자기가 갚는다고! 수수료는 제가 다 내고 무엇을 특혜로 해준다, 예금보험공사에 있는 싼 것을 사준다, 사유지를 공시지가 3분의 1로 사준다…. 엄청난 약속 그 사기 방법에 어찌 안 넘어가겠습니까?”

 

 

 
이런 와중에 회사는 자금압박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마침내 부도위기에 처했다고 합니다. 2004년 총선 이후부터 노부부는 김민석 최고위원의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회사는 부도날 지경이고 하루 한 번씩 꼭 전화를 하던 김민석은 (현재) 전화도 받지 않고 오지도 않고, 절(寺)로 공부하러 갔다, 지방으로 공부하러 갔다는 등, 피하고 만나주지도 않는 배신자로 돌변하였습니다. 정치인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옛말이 떠올라 수십 번을 찾아갔으나 문전박대만 당하고 말았습니다. 부도날 지경이라고, 그 엄청난 선거비용으로 꾸어간 돈을 달라고 한 후부터는 완전히 배신과 상대조차 할 수 없어 도리 없이 이런 사기꾼은 정치생명을 끊어야 하고, 모든 정치인들에게 경각심을 (주어야 한다고) 저는 결심했습니다.
 
사장인 아들에게 부끄럽고, 90 老母, 아들 3형제, 며느리 셋, 손주 5名, 직원 모두에게 더는 피해를 줄 수 없어 검찰에 유서를 보내고 이제 늙은 아내와 함께 죽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물론 신문, 방송에서 대서특필이 되겠지요.
 
아버지, 아버지 하는 그놈에게 정치자금으로 다 뺏기고, 잘되는 회사를 빈털터리로 만들고, 이제야 정치하는 놈들은 모두 다 도적놈이요, 사기꾼이라는 것을 깨달은 지금은 늦었습니다. 내가 돈이 떨어지니까, 심지어 돈 있는 사람을 소개해 사기갈취는 제가 하고, 그로 인해 나는 본의 아니게 사기꾼이 되었고, 자기는 쏙 빠지는 방법. 제갈공명도 못 당하는 정치꾼!!”

 


 
 
  “한방에 60억원을 벌게 해 준다는 그 말에 집까지 잡혀”
 
 노부부는 신보기금 이사장에게 “현재 회사의 총자산이 2억 원도 안 남았다. 배신한 김민석은 검찰의 조사를 받을 것”이라며 “회사를 살려달라”라고 애원했습니다.
 
“달라는 대로 다 주고 허망한 꿈에서 헤맨 제가 잘못입니다. 한방에 60억 원을 벌게 해 준다는 그 말에 집까지 잡혀주고. 추석·설 때 들어오는 물품을 모두 아버님 창고에 다 드리라고 지구당 사무국장에게 전화를 하더니!! 수많은 사조직을 만들게 하고 관리를 하라고 (하더니)!! 어리석은 놈, 사탕 한 알에 다리 한쪽을 준 제가 바보입니다. 저는 배신을 당하고 (김민석은) 지금은 검찰에서 조사를 받겠지요.
 
이사장님, 지점장님. 저희 회사 그동안 사장인 아들이 열심히 뛰어, 삼성으로부터 7시부터 밤 12시까지 구두 안 신고, 운동화 신고 다닌다고 칭찬을 받은 아들입니다. 전국, 3위 큰 업체 빼고는 1위를 하는 회사입니다. 단일 품목으로 12년을 한결같이 하는 회사입니다. 부탁입니다. 저 늙은 어머님, 어린 손자들 온 가족 길거리에 버리지 마시고, (회사를) 키워가며 (대출금을) 받아 주십시오.

 


 
아들 사장은 참으로 성실한 사람입니다. 노력하고 부지런한 사람입니다. 10억 원 정도만 도와주시면 특별관리…. 늙고 어리석은 제가 없다면 단 3~4년이면 다 변제할 수 있습니다. 24억 원을 결손 보지 마시고, 죽어가는 이 생명을 담보로 도와주셔서 키워가며 결손처리 없도록 도와주십시오. 20여 명의 생명을 끊게 하지 마세요. 간절히 애원합니다. 절대로 우리 사장은 (변제)합니다. 영혼이 엎드려 비옵니다. 모두 제가 父로서 관장하고 모두 제가 관리를 한 탓이며 정치인에 (의해) 죽은 것입니다. 이승에서 건승하세요. 2004. 8. 23. 유서인 ○○○과 母 拜上.”
 
노부부는 추신에서 “모든 사실을 검찰총장에게 급송달했다”며 “다시 한번 도와달라”라고 부탁했습니다. 신보기금 측은 유서가 담긴 우편물을 받고 자체 조사를 벌인 결과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민원우편 접수 보고
  1. 민원인: 000(영등포지점 보증기업 00회사 대표 000의 父)
  2. 접수일자: 2004년 8월 24일(화)
  3. 발송일자: 2004년 8월 23일(월)
  4. 주요내용: 민원인 000 부부 동반자살 통보(유서)
  (내용요약)
 
  ―同社(동사)는 1995년에 설립된 연간 매출액 66억 원 규모의 휴대폰 도매업체로 현재 24억 7000만 원 보증 지원한 업체임.
  ―민원인 000은 동인의 子(자)가 운영하는 회사의 경영실권자로서(연대보증인) 신보기금으로부터 보증 지원받는 과정에서 영향력 행사 대가 및 정치자금 등의 명목으로 전 국회의원 김민석에게 보증 취급 시마다 수천만~수억 원의 자금을 지급함에 따라 회사가 부실화되어 부도 위기를 맞게 됨.
  *1998년 1월 6억 원 보증 취급 당시 C 이사장에게 6000만 원(보증금액의 10%), 관계자에게 4000만 원 지급 명목으로 김민석 전 의원이 요청해 1억 원을 지급한 것으로 기술함.
  ―그에 대한 책임으로 동반자살을 결심하게 되었으며, 同社(동사)에 대해 10억 원의 추가 보증지원 요청.
  ―본 우편물(유서)은 검찰총장에게도 동시 발송.
 
  5. 결과
  ―2004년 8월 23일(월) 000 부부 동반자살.
  ―同社의 금융거래 등은 현재 정상이나 곧 폐업 예정임.>

 

 

 

“그거 취재해봤자, 재미있는 내용 없어요” (金民錫 최고위원)

노부부의 유서는 실제로 검찰에 전달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검찰이 유서 내용을 토대로 정식으로 수사를 진행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건의 정황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김민석 씨는 돈을 받아갈 때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철저히 현금으로 가져갔다. 그는 증거가 없을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노부부가 배신감을 느낀 이유도 거기에 있다. 도와달라고 해서 도와주고, 빌려달라고 해서 빌려줬는데 그가 나중에 발뺌을 한 것이다. 결국 회사가 망가지면서 자살에 이른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필자는 지난 9월 김민석 최고위원에게 노부부와의 관계와 유서에 대한 입장을 전화상으로 물었습니다. 김민석의 말입니다.
 
“그 일로 인해 지겨울 정도로 정신적 피해를 많이 받았습니다. 또 이미 검찰조사를 통해 마무리된 것입니다. 그 사람이 허위사실을 주장했으며 그것을 입증할 자료까지 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아요.”
 

 


  ―검찰 조사는 정식으로 받았습니까?
 
  “그 사람이 검찰에 유서를 보냈는데, 검찰에 직접 출두해서 조사를 받았어요.”
 
  ―서울중앙지검입니까? 어디에서 조사를 받았습니까.
 
  “알아서 취재하세요.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관련 사항에 대해 질의서를 보내겠습니다.
 
  “보내도 답변하지 않겠습니다. 검찰이나 당사자들에게 찾아가서 직접 취재하세요. 그거 취재해 봤자, 재미있는 내용이 없을 겁니다.”
 
  ―당당하면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번거롭습니다. 그거 해 봤자, 내용이 없어요.”
 
  ―노부부가 자살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언급할 생각도 없습니다.”
 
  ―노부부가 한때 김 최고위원을 도와준 것은 사실 아닙니까.
 
  “알아서 취재하세요.”
 

 

 

김민석 최고위원은 대화 도중 먼저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필자에게 전화를 직접 걸어와 “만나서 자세히 설명해 주겠다”라고 했습니다. 김민석 최고위원을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나 30분 동안 얘기를 들었습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입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노부부와의 관계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양부모·양아들 사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지역의 유권자지만 잘 아는 사이가 아닙니다. 그들이 나의 양아버지, 양어머니라며 말하고 다녔지만, 사실과 달라요. 그들의 아들은 고려대 출신이라고 말했지만 정확하지 않아요. 그들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자살까지 하면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그와 관련해 검찰에 나가 조사까지 받았고, 무혐의를 받았습니다.”
 
―그분들이 김 최고위원을 도와준 적은 없습니까?
 
“나를 도와준 것은 2004년 총선쯤입니다. 나를 열심히 도와준 것도 아닙니다. 나는 그분을 회장님이라고 불렀어요. 그런데 어느 날 그분이 내게 ‘000이 영등포에 실내 골프장을 만드는데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그분이 000으로부터 억대의 돈을 빌린 것 같았어요. 아무튼 골프장 건축과 관련해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에게 전화를 해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무리한 부탁을 내게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그 부탁을 들어줍니까. 그 부탁을 안 들어줬더니 내 가족들을 못살게 굴었어요. 당시 집사람이 임신 중이었는데 방송국까지 찾아왔어요. 내 차 앞에 나타나 드러눕기도 했습니다. 안 들어주면 자폭하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그 사람들을 불러 대화 내용을 녹음했습니다. ‘나는 내용을 잘 모르니까 알아서 해라’고 했지요. 그러니까 자기들이 ‘잘못했다’고 인정하더군요.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있다가 집사람 휴대폰에 문자로 그 사람들이 자살했다는 메시지가 왔어요. 너무 이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로부터 돈을 받은 적은 없습니까.
 
“그들이 자살하고 난 후 검찰에서 전화가 왔어요. 내가 ‘빨리 가겠다. 모든 것을 다 말하겠다’고 한 후 직접 검찰조사를 받았지요. 나는 검찰에 녹취록까지 보여줬어요. 나는 그들로부터 단돈 1원도 받지 않았어요. 오히려 내가 밥을 사주고 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나에게 돈을 줬다고 하는데 거짓말을 어떻게 그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어요. 당시 나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밉보인 상황이었어요. 만약 내게 문제가 있었다면, 그때 검찰이 나를 가만히 놔두겠습니까?
 
나는 그들이 바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아들은 정말 나쁜 사람입니다. 그분들이 자살한 이유에 대해서는 나는 모릅니다. 자살하는 사람이 유서에 거짓말을 써 놓고 죽는 게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아요. 나를 모함한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최악의 경험을 했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정말이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유서 내용을 직접 확인해봤습니까.
 
  “황당합니다. 나는 돈을 빌리거나, 정치자금을 달라고 한 적이 전혀 없습니다.”
 

 

 

한쪽의 말은 분명 거짓말 

김민석 최고위원은 필자에게 여러 차례 “노부부로부터 단돈 1원도 받지 않았다”며 모함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과연 두 사람이 동반자살까지 하면서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노부부는 “김민석 최고위원에게 속아 돈을 빌려줬고, 그로 인해 회사가 부도나면서 가족들이 어려움에 처했다”며 목숨을 담보로 신보기금에 도움을 요청한 후 생을 마감했습니다.
 
김민석 최고위원은 현재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최고위원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둔 2007년 8월과 18대 총선을 앞둔 지난 2월 사업가 두 명으로부터 선거와 관련해 불법 정치자금 4억 7000만 원을 본인 명의와 차명계좌를 통해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그는 또 지난해 8월 중국 사업가 박 모 씨로부터 별도의 대선 경선 자금 2억 원을 송금받은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노부부가 작성한 유서의 내용도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것입니다. 死者(사자)가 젊은 정치인을 죽어서까지 모함한 것인가, 아니면 김 최고위원이 거짓말로 故人(고인)의 억울함을 끝까지 부인하는 것인가? 어느 한쪽은 분명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출처]

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nNewsNumb=20081210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