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먹고 졸린 이유에 대해서는 의학적으로 명확하게 나오진 않았지만 몇 가지 가설이 힘을 얻습니다.
밥 먹고 나도 모르게 쿨쿨, 식곤증, 당뇨
'오렉신'이라는 물질이 있습니다. 평소 뇌 시상하부에서 오렉신을 분비하는데요. 밥(탄수화물)을 먹어 혈당이 오르면 오렉신의 활성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식사 후 음식이 장에 도달하면 부교감신경계가 활성화하고, 교감신경계의 활성도가 떨어집니다. 그런 정도는 식사량이 많을수록 심해집니다.
이런 식곤증이 심해졌거나 다른 사람보다 심하다면 당뇨병의 한 증상으로 혈당이 급격하게 치솟는 현상 즉, '혈당 스파이크'를 의심할 수 있습니다. 정상의 경우 식전 혈당 100㎎/㎗ 미만을 유지하다가 식후 20∼60㎎/㎗ 상승해 140㎎/㎗ 미만을 유지합니다. 그러나 불규칙한 식사, 과식, 당이 많은 음식 섭취, 수면·운동 부족, 스트레스 등 여러 원인으로 식후 혈당이 급격하게 상승했다가 내렸다가를 반복하면 혈당 변동 그래프가 뾰족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를 '혈당 스파이크'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혈당 변동성이 큰 경우로, 혈당이 급격하게 오른 만큼 우리 몸은 제자리에 가기 위해 췌장의 노동력이 향상합니다. 이런 부담이 장기간 계속 가해지면 결국 췌장 기능이 떨어져 당 조절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당뇨병은 물론 그 합병증으로 심·뇌혈관질환, 미세혈관 질환이 발생하거나 콩팥 기능이 떨어질 수 있다. 따라서 평소 혈당을 안정적으로 유지·관리해야 합니다. 식후 30분부터 2시간 이내에 다른 사람보다 피로감을 많이 느끼거나 집중력 저하, 허기짐, 갈증, 어지럼증 등을 느낀다면 '혈당 스파이크'를 의심하고 혈당 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뇌 각성을 유지하는 오렉신과 새로운 치료약제의 개발
오렉신은 뇌 시상하부에서 생성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수면과 각성주기를 조절해 낮에는 각성상태를, 밤에는 수면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기여합니다.
오렉신의 발견역사는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두 개의 독립된 연구팀이 각각 이 신경펩타이드를 발견했습니다. 한 팀은 미국 스크립스 연구소에 소속된 로이스 데 레세아(Luis de Lecea) 박사와 그의 동료들로 이 물질을 '하이포크레틴'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이들은 뇌의 특정부위에서만 나타나는 두 가지 펩타이드를 발견하고 이것이 신경전달물질로 기능한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 야마가타 대학교의 야나기사와 마사시(Masashi Yanagisawa) 교수와 그의 팀이 오렉신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물질을 발견했습니다. 이들은 해당 물질이 뇌에서 식욕과 에너지대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후 연구를 통해 오렉신·하이포크레틴시스템이 수면과 각성주기, 특히 렘수면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음을 밝혀냈습니다. 더 나아가 기면병과 같은 수면장애와 관련이 있다는 것도 알아냈습니다.
이러한 발견은 수면연구와 신경과학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고 오렉신·하이포크레틴이 사람의 생리학 및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추가연구의 기반이 됐습니다.
오렉신은 낮에 각성상태를 유지하는 데 필수역할을 합니다. 기면병은 바로 이 오렉신이 부족하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발생하는 수면장애입니다. 만성불면증 환자들은 종종 오렉신 수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밤에 오렉신 활동을 억제하면 수면을 유도하고 안정적인 수면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만성불면증은 뇌의 과각성상태를 주요 특징으로 합니다. 과각성상태는 뇌가 수면모드로 전환돼야 하는 밤에도 각성상태가 계속돼 안정적인 수면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렉신을 억제하는 약물은 수면을 유도하고 수면 중 각성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어 수면제로 개발돼 사용되고 있습니다. 오렉신길항제 계열의 수면제를 이중오렉신수용체길항제(이하 DORA)라고 부르는데 밤에 불필요한 각성을 줄이고 자연스러운 수면유도효과를 제공합니다. DORA는 2014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사용승인을 받았습니다. 현재까지 3종류의 약제가 개발돼 미국, 유럽 및 일본 등지에서 처방되고 있습니다.
기존 가바 계열 수면제는 서파수면과 렘수면을 줄이는 반면 DORA는 수면구조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기존 수면제와 달리 내성과 의존성이 낮은 새로운 개념의 수면제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단 아쉽게도 국내에는 아직 도입되지 않았습니다.
기면병은 오렉신이 부족해 낮에 각성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지 않는 질환입니다. 기존 각성제가 뇌를 강제로 각성시킨다면 오렉신작용제는 오렉신을 활성화시킵니다. 기면병의 근본적인 원인이 오렉신 부족임을 생각하면 오렉신작용제는 보다 더 근본적인 치료대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근 기면병환자를 대상으로 한 오렉신작용제에 대한 2상 임상연구가 발표됐는데(Dauvilliers Y, Mignot E, del Río Villegas R, et al. Oral Orexin Receptor 2 Agonist in Narcolepsy Type 1. N Engl J Med. 2023;389(4):309-321. doi:10.1056/NEJMoa2301940) 오렉신작용제는 뇌·혈관장벽을 통과해 뇌의 오렉신수용체와 결합, 오렉신의 자연적인 역할을 모방해 각성을 촉진했습니다. 하지만 일부환자에서 간효소상승이 관찰돼 임상연구가 조기종료됐습니다. 이 연구는 기면병치료제 개발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부작용을 줄여야 실제 임상에서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숙제를 던져줬습니다.
오렉신은 수면·각성조절뿐 아니라 식욕, 에너지대사, 자율신경계활동, 감정, 스트레스반응, 보상시스템 및 중독메커니즘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많은 수면장애환자가 수면문제뿐 아니라 체중, 감정, 행동변화를 경험하고 호소합니다. 기면병과 만성불면증에서 나타나는 식욕, 에너지대사, 감정변화는 오렉신의 역할과 연관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오렉신 관련 약제들이 기존 약제보다 더 생리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렉신의 발견은 기면병 원인을 밝히고 근본적인 치료제 개발에 진전을 이루게 했습니다. 또 만성불면증에서 보다 자연스러운 수면을 유도하고 의존성이 적은 약물을 개발할 수 있게 해 수면장애로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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