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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이슈

아날로그 여행

by 키워드1223 2023. 3. 20.

2013년에 작성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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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까지 3시간 남았군!’

내비게이션이 목적지까지 얼마 남았는지를 지도와 함께 보여준다.

내비게이션 덕분에 목적지까지 찾아가는 동안 바깥 경치를 마음껏 즐기고 같이 여행가는 이들과 즐겁게 갈 수 있다.

 

지금 (2013년)으로부터 7 년 전,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이며 내비게이션은 있긴 있었지만 비싼 제품이어서 지도에만 의존하던 시절 미국 서부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엘에이에 도착해서 자동차를 대여했다.

엘에이 한인 타운을 비롯한 관광지를 구경하고 라스베이거스로 떠났다.

라스베이거스로 떠나기 전, 도착시각 즈음에 호텔도 예약했다. 모든 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 같았다.

지도를 프린트해서 조수석에서 아내가 보면서 나에게 방향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잠시 한눈을 팔거나 오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이야기를 하다 보면 방향을 놓쳐 길을 잘못 들기 일쑤였다.

한번 방향을 놓치면 꽤 오랫동안 돌아와야 했다.

그럴 때마다

‘왜 지금 이 순간에 말을 시키느냐?’

‘노래를 부르니까 방향을 집중을 못 하지’

‘미리 이야기했어야지!’

‘여러 번 이야기해야지.’

등등 끝없이 서로의 잘못으로 돌렸다.

 

끝이 없는 도로를 달렸다.

아뿔싸, 엘에이에서 출발할 때 기름을 가득 채우지 않고 출발한 게 화근이었다.

미국 여행 경험이 아주 없어서 고속도로에 주유소가 이렇게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기름이 충분하지 않을 것 같은데 주유소는 보이지 않고 끝이 없는 아스팔트만 보였다.

하는 수없이 차를 돌려 한시간 반 정도 돌아와서 기름을 넣었다.

이미 예정 시간에 도착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좀 쉬다가 다시 라스베이거스로 출발했는데, 차를 돌렸던 곳에서 얼마 되지 않아 주유소가 있었다!

‘아, 좀 더 가볼걸’

하며 서로 마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마침내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하였다.

만약 그때에 내비게이션이 있었더라면 싸움 없이 바로 목적지에 도착했겠지만, 그때의 추억은 없을 것이다.


목적지를 잘 못 프린트를 해서 일정에 없던 곳을 여행하는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고, 계획에서 벗어난 우연에서 오는 여행의 우발적인 경험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요즘 차를 타면 내비게이션이 음성으로 미리 여기로 저기로 가라고 하는 것을 들으면서 피식 웃음이 난다.

이번 여름에

'내비게이션 없이 지도만 가지고 여행을 떠나볼까?'

라는 겁없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