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6시간 만인 4일 새벽 비상계엄 선포를 해제했습니다. 법조와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헌법 및 법률 위반에 해당하는지, 나아가 형법상 내란죄가 성립할지를 두고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45년 만의 비상계엄 선포, '내란죄' 해당될까
4일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정의당 등 야권은 잇달아 윤 대통령을 내란죄로 고소·고발하거나 고소·고발 방침을 밝혔습니다.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발의했고 소추안을 5일 국회 본회의에 보고하고 7일까지 비상 대기를 하며 표결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내란 혐의 고소와 고발이 이어지자 법조에선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 행위가 형법상 내란죄 요건을 충족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법조에선 내란죄 성립 여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합니다. 내란죄 성립에 대한 절차적 실체적 요건이 갖춰졌는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형법 제87조에 따르면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 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내란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내란죄의 구성요건인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자'라는 구성요건 가운데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이 인정된다고 보는 입장도 다수입니다.
한 고위 법조인은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정당하게 구성된 국회를 일종의 반국가집단으로 몰아간 것으로, 내란죄에 해당한다고 보인다"며 "헌법기관인 국회의 권한 정지를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은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익명을 요청한 헌법연구관 출신 변호사도 "국회가 대통령의 계엄선포를 통제하는 것을 배제할 목적으로 군대를 보내 권한이 없는 계엄군이 국회를 침탈해 들어갔다"며 "이는 위법하고 폭력적인 직무집행으로, 충분히 내란죄에 해당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내란죄에 해당하는지 그 요건을 엄격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결과적으로 내란의 결과와 비슷하게 되었다고 해서 내란이라고 단언할 순 없다"라며 "'내란'의 목적이 있었는지 무슨 논의를 거쳤는지, 절차 위반이 있었는지 등을 따져 법리적으로 엄격하게 따져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부장판사는 "계엄령 선포와 국회 군 투입 등 일련의 행위가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지시를 한 것이고 국무회의도 거쳤으며 형식상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내란죄로 인정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며 "군부나 장군 등이 아닌 대통령이 헌법에 있는 권한에 따라 계엄을 선포한 것이기 때문에 국무회의에서 다수가 반대했더라도 국무회의를 거쳤다면 절차상 요건을 거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중형인 형법상 내란죄는 엄격하게 볼 필요가 있다"며 "이번에 내란죄가 인정된다면 향후 국가정책을 반대하거나 반대 입장 표명을 위한 시위를 두고도 내란죄를 적용하는 상황이 올 수 있을 것 같아 우려스럽다"며 "명확하게 국가 체제를 전복하는 게 아니라면 내란죄 적용 여부를 엄격하게 봐야 한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법원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내란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란의 '목적'"이라며 "국토를 참절(僭竊·국가 영토 일부를 점거해 국가의 주권 행사를 사실상 배제하고 국가 존립을 침해하는 일)하고 국헌을 문란하려는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켰다는 점이 입증돼야 하는데, 국토 참절과 국헌 문란이라는 법 문언이 추상적 규정이어서 입증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군 병력을 동원한 것 자체는 폭동으로 인정할 수 있겠지만, 비상계엄령 선포를 '헌법과 국가 기본 질서를 파괴한다'는 국헌 문란의 목적이라고 바로 인정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재임 중 형사상 소추가 불가능하지만 헌법에 '내란죄를 범한 경우'는 예외로 규정돼 있기 때문에 형사 소추가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내란죄' 인정한 전합 판결도 주목
내란죄 성립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자, 과거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선고한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내란죄 등 혐의에 대한 판결이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1997년 4월 대법원 전원합의체(1996도 3376)는 "내란죄는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 한 행위로써 다수인이 결합해 이러한 목적으로 한 지방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폭행·협박행위를 하면 기수가 되고 그 목적의 달성 여부는 이와 무관하다"며 "국헌문란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는지 여부는 외부적으로 드러난 행위와 그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및 그 행위의 결과 등을 종합하여 판단해야 한다"라고 판시했습니다.
"1980년 5월 17일 당시 시행되고 있던 계엄법 등 관계 법령에 의하면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는 필연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게 되므로 비상계엄의 전국확대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국민에게 기본권이 제약될 수 있다는 위협을 주는 측면이 있고, 민간인인 국방부장관은 지역계엄실시와 관련해 계엄사령관에 대해 가지고 있던 지휘감독권을 잃게 되므로 군부를 대표하는 계엄사령관의 권한이 더욱 강화됨은 물론 국방부장관이 계엄업무로부터 배제됨으로써 계엄업무와 일반국정을 조정 통할하는 국무총리의 권한과 이에 대한 국무회의의 심의권마저도 배제돼 헌법기관인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이 받는 강압의 효과와 그에 부수해 다른 국가기관의 구성원이 받는 강압의 정도가 증대된다"라고 밝혔습니다.
"따라서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조치의 강압적 효과가 법령과 제도 때문에 일어나는 당연한 결과라고 하더라도 법령이나 제도가 가지고 있는 위협적인 효과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가진 자에 의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에는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조치가 내란죄의 구성요건인 폭동의 내용으로서의 협박행위가 되므로 이는 내란죄의 폭동에 해당하고,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는 전국의 평온을 해하는 정도에 이르렀음을 인정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형법에서 정한 죄 가운데 특별히 죄의 구체적 요소를 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내란죄가 그렇다"며 "'무엇이 내란인지' 법 해석으로 규명돼야 하며 내란의 요소가 무엇인지 따져봐야 하는데 선례가 되는 판례가 많지 않아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尹 탄핵 소추 사유 된다" 중론
계엄 선포를 두고 법조에선 내란죄 가능 여부와 별개로 윤 대통령을 탄핵 소추할 수 있는 사유가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계엄 선포가 헌법상 요건에 어긋나는 명백한 탄핵 사유에 해당돼 정치적 책임을 넘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국회 안에 군대가 들어가고 진입을 못 하게 막는 등 보도된 내용만 살펴보더라도 탄핵 소추 사유가 충분해 보이고 헌법재판소에서 깨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관련해선 무능의 문제이지 위법의 문제는 아니란 의견이 있었지만 이번 사안은 위헌·위법은 확실해 보인다"라고 말했습니다.
헌법연구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국회에 군대를 보낸 것, 폭력적으로 진입 시도를 한 것, 계엄에 대해 유일한 통제수단으로 헌법이 예상한 국회에 의한 해제 요구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조치를 한 것 자체가 헌법 위반"으로 탄핵 사유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 전직 헌법연구관도 "내란의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 내란죄가 성립할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충분히 탄핵 소추 사유는 될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검사 출신의 한 로펌 변호사는 "넓게 보면 내란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구체적으로 엄격하게 누가 어떻게 지시를 했는지, 어떤 지시에 따라 군이 국회에 들어갔는지 따져야 할 것"이라며 "탄핵 사유가 되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탄핵 소추 후 내란 혐의에 대한 수사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습니다.
탄핵 소추되면 공은 헌재로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여부는 헌법재판소가 판단하게 됩니다. 민주당,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등 6개 야당은 4일 오후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5일 국회 본회의에 소추안을 보고하기로 한가운데, 현재 재판관 6명 체제의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 사건 심리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가능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현재 9명의 헌법재판관 가운데 3자리는 공석이지만 6명 재판관으로 탄핵 심판 사건을 심리·선고할 수는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앞서 헌재는 헌법재판소법 제23조 1항에 따라 헌재는 재판관 7명 이상의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의 효력을 멈추도록 결정했습니다. 헌재가 탄핵 결정을 내리려면 재판관 6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현재 6명의 재판관이 모두 찬성한다면 이론상 탄핵 선고까지 가능합니다.
다만 헌재가 '6인 체제'로 대통령 탄핵사건 선고까지 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도 나옵니다. 헌법연구관 출신의 전직 교수는 "헌법이 헌법재판관 수를 9명을 정해놓은 이유는 다양한 논의 속에서 결정을 하도록 한 헌법적 명령"이라며 "더군다나 대통령 탄핵 같은 중대 결정을 6인 체제에 의해 결정하면 정당성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 때문에 6인 체제로 선고까진 이르진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10월 이종석 헌재소장과 이영진·김기영 재판관 등 국회 선출 몫인 헌법재판관 3명이 임기 만료로 인한 퇴임을 앞두고 헌재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헌법재판관 정족수 부족으로 자신의 탄핵 심판이 정지되는 것이 부당하다며 낸 가처분 신청에서 인용 결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재판관 7명 이상 출석'을 정족수로 규정한 헌재법 조항의 효력이 이 위원장 탄핵 본안 결정 전까지 정지됐습니다. 현재까지 여야는 국회 몫의 헌법재판관 추천 수를 두고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며 이종석 전 헌재소장과 이영진·김기영 전 헌법재판관의 후임 인선은 두 달 가까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계엄 선포로 인해 향후 후임 인선에 급물살을 탈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그에 앞서 윤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돼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더라도 대통령 권한대행이 후임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있을 것이란 것이 법조의 중론입니다.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헌재에서 인용된 뒤 황교안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 이선애 전 헌법재판관을 임명한 전례도 있습니다. 만약 윤 대통령이 탄핵 소추된다면, 헌재 결정이 나올 때까지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됩니다. 탄핵 결정이 내려지면 대통령은 파면되고 60일 내 대통령선거도 치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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