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이 드디어 노벨상을 품었습니다. 스웨덴 한림원은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국 작가 한강을 선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스웨덴 한림원은 “역사적 상처에 직면하고 인간 삶의 취약성을 노출시키는 한강의 시적 산문”을 이유로 그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한다고 밝혔습니다.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소설가 한강(54)이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스웨덴 한림원이 10일(현지 시각) 발표했습니다. 아시아 여성 작가로는 최초 수상이며, 한국인의 노벨상 수상은 지난 2000년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평화상 수상에 이어 두 번째, 아시아 작가 수상은 2012년 중국 작가 모옌 이후 12년 만입니다. 한강은 앞서 2016년 소설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을 받은 바 있습니다.
스웨덴 한림원은 선정 이유로 “역사의 트라우마에 맞서는 동시에 인간 생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시적인 산문”을 꼽았습니다. 노벨 문학상은 이날까지 121명이 받았으며 이 중 한강은 18번째 여성 수상자입니다. 이웃 일본에서는 1968년의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1994년 오오에 겐자부로가 수상했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인도의 라빈드라라드 타고르가 1913년 최초로 수상했습니다.
역사의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에 대해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난 작가이자, 음악과 예술에도 헌신했다고 소개했습니다. 1993년 시인으로 먼저 등단한 후 2년 후에 소설가로 등단했다면서 글쓰기에 있어서 장르상 큰 폭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한림원 측은 2007년 발표한 소설 ‘채식주의자’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 그 후의 작품 세계도 상세히 소개했습니다.
1993년 시에 이어 이듬해 소설로 등단한 한강은 서정적인 문체와 독특한 작품 세계로 문단의 주목을 받아온 작가입니다. 그동안 ‘그대의 차가운 손’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등의 소설과 더불어 시집과 동화책을 두루 펴내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습니다.
국내외 독자들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흡인력으로 한국문학의 위상을 높여왔습니다. 맨부커상 수상 이후 5년 만에 발간한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로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받았고, 올해 초에는 프랑스 에밀 기메 아시아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세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제주 4·3 사건의 비극에 접근한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소설가인 주인공 경하가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한 친구 인선의 제주도 집에 가서 인선의 엄마 정심의 기억에 새겨진 아픈 과거사를 되짚는 내용입니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8월 ‘불가능한 작별(Impossibles adieux)’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출간됐습니다. 프랑스 현지 출판사는 초판 5000부를 인쇄했다가 메디치 외국문학상 수상 이후 1만 5000부를 새로 찍기로 했습니다.
한국인 최초 부커상 수상
한강은 앞서 지난 2016년 한국인 최초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당시 수상작인 ‘채식주의자’는 트라우마(강한 충격을 겪은 뒤 나타나는 정신적인 질병)를 지닌 한 여자가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극단적인 채식을 하는 이야기입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 문학 선임기자 보이드 턴킨은 “잊히지 않는 강력하고 근원적인 소설”이라며 “아름다움과 공포가 기묘한 조화를 이룬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서정적이면서도 통렬한 작품”이란 찬사를 보냈습니다.
소설 ‘채식주의자’는 해외 40개국에 판권이 팔렸고, ‘소년이 온다’, ‘흰’ 등 다양한 작품들이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돼 판매됐습니다. 한강은 한국소설문학상·이상문학상·동리문학상도 받았습니다. 한국 문단의 거장, 소설가 한승원의 딸입니다.
세계에 한강의 문학이 알려진 데는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37)의 공도 컸습니다. BBC 방송 등 외신에 따르면 21세까지 오직 모국어인 영어만 할 줄 알았던 그는 대학 졸업 후 한·영 번역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영국에서 한국어에 대해 공부한 사람이 거의 없단 점에 주목해서입니다. 스미스는 “번역할 때 문학적 감수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라고 말했습니다.
보편적 주제 ‘폭력’, 서정적 언어로 탐구
한강은 소설을 통해 일관되게 역사적 사건을 통해 인류 보편의 주제인 폭력의 문제에 접근, 특유의 서정적이며 미려한 문장으로 풀어냈습니다. 1998년 발표한 첫 장편 ‘검은 사슴’부터 폭력과 삶의 비극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2014년작 ‘소년이 온다’는 한강의 문학성과 주제의식이 정점에 이른 작품으로 꼽힙니다. 그는 지난해 한 강연에서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 안에 수많은 종류의 폭력이 담겨 있다. 역사적 사건에 관해 글을 쓴다는 것은 폭력의 반대편에 서겠다는 맹세이자 인간 본성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강이 폭력의 비극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광주민주화운동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80년 당시엔 서울에 살고 있어 직접 현장을 보진 못했으나, 13세 때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이 보여준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 사진첩에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에게는 상금 1100만 크로나(약 13억 4000만 원)와 메달, 증서가 수여됩니다.
[출처]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4/10/10/FJ7RNNGJ7NCQTBINYIOQBDAXVQ/